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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다발

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01

오선비 2018. 3. 26. 18:40




구조와 구조주의     



 우리는 흔히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문제들을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이 구조적인 문제는, 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 몇 가지를 제거하거나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는 흔히 말하듯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논의될 수 없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예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들이 정치인 몇 명을 솎아 내거나 법안들을 몇 가지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근본적인 차원의 해결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조적인 문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으며, 왜 오늘날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 걸쳐서 넓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본래 '알고자 하는 존재' 이기에 고대에서 현대까지 무언가를 끊임없이 알고자 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해결될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하나의 중요한 화두는 '개별적인 현상'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개별적인 현상을 지배하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구조'를 중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상되듯이 구조주의라는 것은 구체적인 현상보다는 그 배후에서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보편적인 구조가 실재한다고 여기고 그 구조를 추적하는 것이다. 간단히 '현상'의 진영과 '보편'의 진영이라고 두면, 이 두 진영이 이토록 논쟁을 하는 이유는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현상의 진영은 애초에 보편이라는 것이 실재하는가를 문제로 삼는 것이고, 보편의 진영은 현상의 배후에는 반드시 보편이 있으며, 현상이란 보편에 종속된 덧없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참 오랜 논쟁이었다. 고대에는 '유명론'과 '실재론'의 싸움이었으며, 중세에는 '보편 논쟁'이었으며 이것이 현대에는 '현상'과 '구조'의 대립으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20세기 이후 서구 사상에서 구조에 대한 개념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으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구조주의와 관련하여 문제들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구조 언어학, 구조 인류학 등이 구조주의의 측면이라면,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은 구조주의의 반대 진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사실 철학의 입문단계에서는, 구조 언어학, 구조 인류학,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 여러 사조나 사상들의 이름조차 버거운 경우가 있다. 정 궁금하다면 검색을 통해서 최소한의 이해만 하고 넘기거나, 그저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과감성(?)도 필요하다. 너무 하나하나 완벽하게 알고가려고 하면 금방 지칠 것이다. 



 사실 구조에 대한 개념과 구조주의는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전혀 논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란, 다양하고 역동적인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정태적인 뼈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구조주의는 그러한 뼈대를 탐구하는 학문의 한 방법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구조와 구조주의의 개념이 20세기 사상 논쟁의 중심에 자리 잡히게 된 것인가? 무엇보다도 구조 개념과 구조주의가 촉발시킨 논쟁이 필연적으로 인류 사상사에서 인간 주체가 차지하고 있던 절대권을 뒤흔들어버렸다는 것에 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결정하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인간 활동의 배후에는 정형화된 구조가 있고, 우리는 그 구조에 사실은 지배받고 있는 것이라면? 하는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의 시작은 신기하게도 철학적인 분야가 아닌, 언어학 분야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20세기 초 언어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체계'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종래 언어 현상을 탐구할 때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만 연구하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었다. 그래서 언어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체계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체계를 파악하려는 '구조 언어학'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실증적이고, 역사적인 연구 방법은 언어학뿐 아니라 당시 모든 분야에서 받아들여졌던 방식이었는데, '체계'에 대한 개념은 이러한 실증적이고 역사적인 지적 풍토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언어학 분야에서만 한정된 체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인문학 분야를 거쳐 학문 전반으로 확장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체계라는 개념은 '구조'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논쟁거리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보다는 그것을 지배하는 추상적인 법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구조주의의 기본 입장이었다.     


 현대 언어학에 '체계'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언어학자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인데, 소쉬르 언어학의 핵심적인 면모는 개별적인 언어 현상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 현상을 '파롤'과 '랑그'로 구분했다. 파롤이란, 우리가 특정 상황 속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발화(發話)를 말하며, '랑그'는 파롤을 구조화하는 체계를 말한다. 소쉬르는 파롤보다는 랑그에 무게를 두고 연구하였다. 그래서 소쉬르의 언어학은 '랑그언어학' 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어 현상을 연구할 때 소쉬르는 파롤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대에 당연히 혁신적이었지만, 비판 역시 따라오게 되는데 구조 언어학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인간 언어에 대한 논의를 랑그에서 시작하면서, 발화 행위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배제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이 기반에서 구조주의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선험적인 구조를 가정하고 여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간 현상의 구체적인 양상을 중요시하는 실존주의, 현상학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해 왔다. 이 논의의 중심에는 항상 '구조'와 '현상'의 대립이 있었으며, '리쾨르'는 이 대립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구조와 현상 사이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 논쟁은 인간의 삶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의 갈등이다."   


 구조 언어학 이후 언어를 단순한 '기호'의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 아니면 '의미'의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거리를 제공해 왔다. 기호의 차원에서 본다면 언어는 외부 상황과 철저하게 단절된, 하나의 닫혀버린 집합으로 이해될 수 있고, 의미의 차원에서 본다면 닫힌 집합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상황들과 구체적으로 연관되고 호응되는 열린 집합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기호'와 '담론'의 영역에 대한 논의로 확장이 되는데, 기호와 담론의 구분은 언어체계가 외부세계와 맺은 관계를 고려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구조주의가 어떤 식으로 발전되었고, 또 어떤 문제들을 야기시켰는가에 대한 모든 논의를 제쳐두고서라도, 확실한 사실 하나는 구조주의는 언어학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인문, 사회, 과학 전 영역에 걸쳐서 하나의 화두로 자리 잡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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