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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02

오선비 2018. 3. 27. 10:26





소쉬르 언어학의 개념들

 


랑그와 파롤


 소쉬르 언어학은 앞의 포스팅에서 살펴본 대로 20세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처음으로 체계 개념을 도입했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의 본질을 개인이 사용하는 구체적인 언어가 아닌, 언어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체계 속에서 찾으려 한 것이고, 전자를 파롤로, 후자를 랑그로 구분하였으며, 소쉬르 언어학은 랑그에 대해 연구했다.

 

 보편적인 체계인 랑그와 언어의 구체적인 사용인 파롤을 구분하는 것은 '공시태''통시태'의 구분과 '기호체계의 닫힘'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소쉬르 언어학의 핵심 개념들이다. 랑그는 언어의 체계이며, 파롤은 그 체계 속의 언어 사용을 의미한다.

 

  

 "랑그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뇌 속에 자리 잡히게 된 집단적인 형태이며, 파롤은 개인적이며 순간적인 개별적 경우의 총합이다."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은 언어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개별적인 언어 사실들이 시공간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즉 당시 언어학자들은 언어 현상을 역사적이고 심리적인 요인들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하지만 소쉬르는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여러 외적인 요인들과 분리해 바라봄으로써 현대 언어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소쉬르가 내건 하나의 슬로건은 '현상에 대한 구조의 우위'였다. 이처럼 언어 현상에 대한 역사적, 심리적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구조주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자인 밴베니스트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한편으로는 역사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유형의 심리학에 종속되어 있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반언어학의 제 문제Ⅰ』

 

 

 소쉬르의 언어학은 언어를 '사회, 문화적 맥락'이라는 외적 요인과 '체계와 규칙과 관련된 것'이라는 내적 요인으로 나누고 후자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언어학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상은 랑그인데, 이는 그 자체로서, 그것만을 위해서 고찰되어야만 한다."

일반언어학 강의

 

 

 랑그는 언어활동의 사회적인 부분으로, 말하는 사람 개인이 반드시 따라야 할 체계이며, 파롤은 랑그가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실현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소쉬르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심리적이든 역사적이든 모든 외적인 영향에서 벗어나서 언어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어활동 연구에는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본질적인 것으로 랑그를 그 대상으로 하는데, 언어는 본질상 사회적인 것이며 개인과는 무관하다. 이 연구는 전적으로 정신적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후차적인 것으로 언어활동의 개인적인 면, 즉 발성을 포함한 파롤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정신적이고 물리적이다."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가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개인이 처해 있는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말하는 방식은 우연한 차이에 불과할 뿐 언어활동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활동의 본질은 말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발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들 사이에 서로 구분되는 차이를 중시하는 체계 속에 있는 것이다.

 


공시태와 통시태

 

 소쉬르는 '공시태''통시태'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소쉬르의 랑그에 대한 강조는 공시태에 대한 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시태는 정해진 시점에서 작동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며, 통시태는 '요소들의 변화'를 의미한다. 사실 공시태와 통시태는 일종의 번역어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쉽게 풀어서 본다면, 공시태는 역사적인 관점이 아닌 특정 시점(가령 현재)에서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통시태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로, 현대 영어에서는 you를 단수와 복수, 주어와 목적어로 모두 사용하고 있지만, 초기의 영어에서는 주어의 youye로 목적어의 youyou로 구분했으며,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theethou로도 구분하였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러한 구분 없이 you하나로 통용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you의 변천과정을 안다는 것이 우리가 언어생활을 하는 것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아니면 현대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만약 이러한 구분을 하여 현대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도리어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즉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추적하여 통시적으로 연구한다고 해서, 현재 언어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파악하는 공시적인 상태를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소쉬르는 통시적인 것보다는 공시적인 연구에 주 관심을 둔다.

 

 소쉬르는 일반 대중들은 언어를 이루는 요소들의 변화(위의 you의 변천과정처럼)를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언어 상태를 연구해야 할 언어학자는 반드시 '과거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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