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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03 본문

철학적 사유다발

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03

오선비 2018. 3. 28. 12:15



기호체계의 닫힘     



 소쉬르에 따르면 랑그는 '기호들의 체계'인데, 소쉬르가 말하는 기호란, '개념'을 의미하는 '시니피에'와 청각 이미지를 의미하는 '시니피앙'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개념이 생겨날 때,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사이에는 절대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며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사회적인 약속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가령, 우리는 네 발이 달리고, 가정집에서 많이 기르며, 인간과 매우 친숙한 동물이며, 멍멍하고 짖는 동물을 '개'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이 동물을 'dog'라고 말하며 일본에서는 'いぬ'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chien', 독일에서는 'Hund'라고 부른다. 즉 각각의 단어들은 서로 다르게 말해지는 청각 이미지와는 아무런 필연적인 관련이 없이 그 동물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동물인 '개' 자체를 시니피에라 하는 것이고, 그 시니피에에 대한 청각 이미지(말해지는 단어)인 '개', 'dog', 'いぬ', 'chien'을 '개'를 의미하는 시니피앙들이다.      


 이러한 기호는 다만 동일한 집단 안에서 다른 기호들과의 대립 속에서 서로 '구분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언어 기호와 외부세계의 관련성을 배제하고 언어 현상을 오로지 그 자체로만 보고자 하는 것이 '기호체계의 닫힘'이라는 개념이다. 즉 이 개념은 기호체계가 외부세계와의 특정 상황과 단절된 상태에서 오직 내적인(그 집합 내에서만) 메커니즘에 따라서만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쉬르는 이를 설명할 때 체스 놀이를 예로 든다.     


 "체스 놀이가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와 기물의 재질, 모양, 크기, 색깔 등은 체스 놀이를 이끌어가는 내적 규칙과 전혀 무관하다. 기물들은 재질, 모양, 크기, 색깔과 상관없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물을 움직이는 규칙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는 이와 유사한 모든 놀이, 가령 바둑, 장기 등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기호체계가 닫혀 있다는 것은 기호들은 자신이 속한 체계의 차원을 넘어서는 외부의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기호의 가치는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체계 안의 다른 가치들과 맺는 관계에 따라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호는 동일한 체계에 속한 다른 기호와 맺는 관계를 떠나서는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기호는 자신을 다른 기호와 구분해 주는 고유한 무엇인가를 갖기 때문에 의미를 취하게 된다.

     

 철학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기호체계의 닫힘은 철학자 헤겔이 개념들을 정의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 추가로 기술하도록 하겠다. 헤겔은 어떤 개념들을 하나의 유한 집합 속에서 이해했는데 가령 집합 'S'가 있고 이 집합을 S = {a, b, c}라고 하자, 그렇다면 각각의 원소들(a, b, c)은 이렇게 서로 구분될 것이다. a는 b가 아니고, c도 아니다. 즉 a≠b, a≠c이다. 이처럼 한 집합 안에서 각각의 원소들이 구분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소쉬르의 기호체계의 닫힘과 완벽하게 일치되지는 않으나, 연관해서 생각해봄직 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쉬르는 언어학의 문제를 하나의 기호체계로 이해하여 기호학의 대상으로 보고자 했다.     


 "언어학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기호학적이다. 만약 언어의 진정한 특성을 찾으려 한다면, 모든 체계의 공통점 속에서 언어를 파악해야 한다. (중략) 또 이들을 기호학 속에 묶어서, 과학의 법칙에 따라 설명할 필요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학은 이렇게 기호학과 연결됨으로써 현대 여러 과학 사이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기호학은 사회생활 속에 있는 기호의 삶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이는 우리에게 기호가 무엇이며 어떤 법칙에 따라 지배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소쉬르 언어학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이자, 비판받는 부분은 이 기호체계를 외부세계와 연결 짓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소쉬르는 기호체계를 외부세계와는 무관한 자족적인 체계로만 보고자 한 것이다. 사실 언어활동의 본질이라 함은 다양한 인간들 사이에서의 소통에 있다. 하지만 하나의 닫힌 체계로 보는 것은 이 본질에서 사뭇 멀어진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소쉬르 언어학이 받는 비판은 일면 타당하며, 충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구조 언어학은 20세기 초에 대두되었고,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언어연구 방법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런데 이는 인간들 사이에서의 실제 언어 수행보다는 언어의 체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해서 랑그와 공시태를 파롤과 통시태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으며, 이는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함의하게 되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논쟁이 심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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