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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다발

도자기 무덤

오선비 2018. 3. 21. 18:45





도자기 무덤

 

 

 여기 솜씨 좋은 도예가(陶藝家)가 있다. 이 도예가는 자신의 평생을 도예 그 자체에 바쳤다. 어려서부터 도예라는 것은 자신을 사로잡는 무언가 였다. 첫째로 자신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그리고 둘째로 남들 역시 만족할 만한 작품을 위해 깨고 또 깼다. 자신의 작품들을 수없이 깨왔고, 자기 자신도, 자신의 작품들만큼이나 깨왔다. 부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만들기 위하여. 그 도예가의 집 뒤편에는 고요하고 장엄한 도자기 무덤이(아니 그것은 어쩌면 도예가의 역사였는가?) 있었다. 다행히도 깨져버린 도자기들은 그 도예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 폐허위에 빛나는 작품이 태어난 것이다. 도예가가 만족할 만한 그 도자기는 날렵한듯하지만 원만한 곡선을 가졌고, 어느 날은 무거워 보였지만 또 어느 날은 가볍게 날아오를 것 같았다. 도자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깨져나갔던 작품들의 한이, 도예가의 삶이 녹아있는 듯하였다. 어찌됐든 이 작품은 모든 것의 보상이었다.

 

 "오오! 이 아름다운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것은 그간 지나갔던 세월을 돌이켜볼 때, 도예가에게 있어서 아주 마땅하고 합당한 감정. 도예가는 이 작품을 들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과 같은 도예가는 아니지만 아름다움만은 기가 막히게 볼 수 있는,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살고 있는 도인(道人)에게로. 도예가는 자신의 작품을 챙겨 길을 떠났다. 며칠을 걸어가 도예가는 도인과 만날 수 있었다. 도예가는 드디어 자신의 작품을 도인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였다.

 

 "이보시오. 참 오랫동안 찾아다녔소. 그리고 참 오랫동안 기다리셨소. 당신에게 내 작품을 보여드리겠소!" 도예가는 작품을 싼 보자기를 조심히 풀었다. 완벽한 도자기의 자태가 비로소 도인의 눈앞에! 도인은 도예가의 자기를 슬쩍 보더니만 눈을 번뜩이며 두 팔을 뻗었다. 도예가는 도인에게 자신의 자기를 건네었다. 도인은 자기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자기의 속도 바라보고, 밑바닥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도인은 한참을 그러더니 만족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 살면서 이리도 아름다운 도예는 본적이 없소이다." 도인의 그 말을 들은 도예가는 수십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도인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당신의 집으로 갈 터이니 앞장서시오." 도예가는 의아한 듯이 말했다.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오? 작품은 이것이오. 내 집에는 무슨 볼일이 있소?"

 

 하지만 도인은 도예가에게 앞장서서 걸어가라는 듯이, 말없이 손을 앞으로 휘휘 저었다. 도인은 그 후로는 도통 말없이 팔만 휘젓는 통에 도예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고, 도인은 느린 걸음으로 도예가를 따라 걸어갔다. 또 다시 며칠을 걸려 도예가와 도인은 도예가의 집에 도착하였다. 도인은 도착하자마자 물 한 모금도 걸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집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깨어진 도자기의 조각들을 몇 시간이고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살아있다. 이 조각들은 분명히 살아있어!" 살아있다니? 도대체 무엇이? 도예가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무엇이 살아있다는 말이오? 내 작품은 여기에 있소. 그것들은 실패작이오 그래서 깨부순 것이오." 도인은 빙긋 웃더니 "그 작품은 아름답지만 죽어있지, 하지만 이 조각들은 아름답고 또 살아 있소." 도예가는 도인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보시오. 며칠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도예는 본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은 또 죽어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며칠 동안 산속을 헤매다보니 정신이 나간 것 아니오?" 도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도자기를 살리려면 반드시 깨부숴야하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멈출 것이오."

 

 도예가는 도인이 마치 자신의 인생을 바친 작품을 시기하여 그렇게 말을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도인을 쫓아냈다


 도인은 허허 웃으며, "죽은 것들이 있기에 산 것이 있는 것이고, 죽어야 사는 것을 모르는구나!"

 

 그리고 몇 년 뒤였을까? 그 도예가가 자신의 작품을 다시 부숴버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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