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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다발

줄광대

오선비 2018. 2. 28. 17:03


줄광대

 


 줄광대는 줄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구경꾼들의 여러 염려 덕택으로 순탄히 올라오긴 했다만, 여기서 저기까지 건너가기가 장히 어려운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바람에도 숨구멍이 있다. 그 숨구멍을 피해 건너가야 한다. 깃털과 손에 든 부채로 바람의 결을 읽어내야 한다.

 

 처음 내딛는 발과 마지막에 내딛는 발은, 꼭 한 걸음 같아야만 한다. 줄 끝이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겠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도 안 되는 것이다.

 

 줄 위에 올라서면,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버리고, 그곳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 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바로 알아채고서는, 나를 호되게 꾸짖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줄을 잘 타면,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어린 나이에 줄에 올라, 삼십여 년 째 줄을 탄다. 구경꾼들의 간담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로 재주도 부렸다. 하지만 줄 위의 두 발이 자유로워질수록, 땅 위의 두 발은 위태로워져만 갔다.

 

 세상엔 줄광대가 밟을만한 땅이 흔찮을 것이 당연하지.

 

 "근데 말여! 내가 줄을 타면 하나 좋은 것이 있는디, 여기 있는 분들이 나를 올려다본다는 거여!"

 

 언젠간, 줄 위에서 내려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어린 줄광대들이여, 나를 믿고 따라들 오시게. 줄 위의 고독과 고단함도, 줄 위를 걷다보면 잊혀 질 걸세. 죽을 판이, 살 판 되었네.

 

 "얼씨구."



* 예전 줄광대관련 영상을 보고 너무 감동해서 남겨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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