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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15 - 비트겐슈타인 본문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15 - 비트겐슈타인

오선비 2018. 3. 5. 19:45




15. 비트겐슈타인

 


 천재철학자를 한 명 뽑아봐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트겐슈타인을 뽑을 것이다. 그의 기이한 행동들, 그리고 그는 혜성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귀족집안의 자제였고, 원래는 공학도가 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러셀에게 일종의 상담을 받으러 갔고, 러셀은 글을 한 편 써오라는 엉뚱한 과제를 낸다. 비트겐슈타인은 글을 하나 써갔고, 러셀은 그 글을 읽고 너는 반드시 철학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 했다. 러셀은 저명한 철학자, 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는데, 비트겐슈타인을 만난 뒤로는 논리학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제는 비트겐슈타인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논리학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적인 사고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철학적인 사고를 일종의 정신병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매 순간 힘들어 했고 죽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살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종교적으로 독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전쟁이 난 것이다. 그는 전쟁에 지원했다. 그는 죽기 위해서 전쟁터에서도 앞장서서 달려갔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죽고자 하니 살았다. 그는 전쟁에서 업적을 세워서 무공훈장을 3개나 받아내고 전역을 하게 된다. 그의 죽기위한 정당한 시도는 실패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전쟁통 속에서 짧은 책을 한 권 쓴다. 책의 이름은 '논리철학논고' 였. 그는 그 글을 러셀에게 보내고, 러셀은 그 책을 읽고 이것은 혁명이라고 여겨서 출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떠들썩해졌다. 그 책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 이런 것이다. 언어에는 반드시 지시대상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강아지라고 하면 강아지에 해당되는 실제 사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힘들다라고 한다면, 이 힘들다라는 것은 지시대상이 없다.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하기에, 전자는 말해도 되는 것이고, 후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문학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적어도 논리적인 측면에서는 반드시 지시대상이 있는 것만을 말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후자에 나온 '힘들다'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들은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지시대상이 없는 것을 지시하려고 하는 순간 해결되지 않는 철학적인 논쟁만 벌어질 뿐이다. 그런 것들은 보여져야만 하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해야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후에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시골마을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런데 그는 원래 귀족자제였기 때문에, 시골의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일종의 격(?)이 안 맞았다. 사용하는 언어의 뉘앙스나 태도도 달랐다. 비트겐슈타인은 깨달았다. 아직 철학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다시 철학을 하러 떠났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또 냈는데 '철학적 탐구'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무엇을 깨달은 걸까? 


 그의 후기 철학에는,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쉽게 말해서 같은 개념이어도 어느 상황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상황에 맞는 언어들로 그 상황에서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예로, 우리가 욕쟁이할머니네 식당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욕쟁이할머니는 우리에게 말한다. "야이 쌍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밥을 처먹으러 오냐 에이 빌어먹을 놈들아!"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었어도 우리는 "어휴 할머니 너무 구수하시네 하하하" 하고 자리에 앉는다. 저 욕만 보면 나쁜 말이지만, 욕쟁이할머니네 라는 특수한 상황이 저 말을 재밌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 말을, 유명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했다면? 옷을 쫙 빼입고, 상견례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순간, "야이 미련한 가족들아 결혼은 무슨 이 빌어먹을 놈들아" 라고 말했다면? 바로 파혼인 것이다. 예가 거칠었다. 이해해달라.


 부드러운 예를 하나만 더 들겠다. 예전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보급되고, 싸이월드(기억하려나 모르겠다)가 대박을 쳤을 때, 우리말을 사랑하는 언어학자들은 상당한 염려를 했다. 우리말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위 외계어라고 하는 이상한 맞춤법들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거의 해독을 해야만 읽을 수 있는 문자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비트겐슈타인이 봤다면? 그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곳에는 그곳만의 언어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소통을 하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여담으로, 후에 비트겐슈타인은 병에 걸렸다. 드디어 죽을 기회가 한 번 더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기쁜 마음에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기쁜 소식이 있다네, 내가 죽을 병에 걸렸다고 의사가 말해주었다네, 하지만 안 좋은 소식도 있다네, 지금 당장은 죽을 수 없다는 것이네."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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