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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비의 시간 죽이기
4.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원래 시골사람이다. 시골에서 철학을 했던 사람이다. 시골의 전경을 떠올려보자 한적한 마을, 구름이 떠다니고, 강이 흐른다. 사람은 마음이 넓어지고, 천천히 본질을 지키며 흘러가는 자연과 시간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하기위한 좋은 배경이 된다. *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그 범주가 너무 넓어서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쉽게는 세계의 형성 원리라든지, 존재란 무엇인지, 그리고 신 등에 관한 철학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을 하다가 데카르트는 도시로 간다. 암스테르담으로. 당시의 암스테르담은 근대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한 도시문명이었다.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한다. 모더니티의 세계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줄광대⌟ 줄광대는 줄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구경꾼들의 여러 염려 덕택으로 순탄히 올라오긴 했다만, 여기서 저기까지 건너가기가 장히 어려운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바람에도 숨구멍이 있다. 그 숨구멍을 피해 건너가야 한다. 깃털과 손에 든 부채로 바람의 결을 읽어내야 한다. 처음 내딛는 발과 마지막에 내딛는 발은, 꼭 한 걸음 같아야만 한다. 줄 끝이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겠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도 안 되는 것이다. 줄 위에 올라서면,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버리고, 그곳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 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바로 알아채고서는,..
3.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만큼이나 방대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험을 위한 도식화는 쉽다. 플라톤을 이상주의자라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다. 물론 이는 시험을 위한 도식이다. 둘 다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진리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현실주의자라는 말은, 돈만 벌고 그런 현대적인 의미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생히 체험되는 우리의 현실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학적인 철학자였다. 세계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
2.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그의 철학은 너무도 방대해서 평생을 말해도, 말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쓰레기 강의이므로, 주요 개념만 설명한다. 시험에는 이데아와 정의에 대해서만 나온다. 먼저 이데아. 이데아는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 라고 말한다. 저 여자는 아름답다. 저 물건은 아름답다. 저 폭포는 아름답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어찌 아는가? 누가 알려줬는가?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를 본적이 있는가? 아름다움 자체를 본적도 없으면서 아름다운 것들은 어찌 알 수가 있지? 그래서 플라톤의 물음은 항상 이렇다. 정의로운 행동들이 아니라, 정의 그 자체를 묻는다.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를 묻는다. 플라톤의 상기설. 플라톤은 이미 우리..
1. 소크라테스 유명한 소크라테스. 우선 소크라테스의 시대적 배경을 간단히 짚고 간다. 당대 그리스 세계는, 혼란이 어느 정도 잠식된 세계였다. 이 혼란은, 페르시아 전쟁 후,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에서의 혼란을 말한다. 페르시아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일종의 제국적인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아테네는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많은 지식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러 세계에서 프랑스 파리로 몰려든 것처럼. 하지만 당시의 지식인들(싸잡아서 소피스트라고 해두자)은 이전 철학자들이 탐구하던, 세계의 진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도구적인 지식들에 대해서 탐구했다. 그러니까, 돈을 잘 벌려면, 말을 잘하려면(당시엔 소송이 많고, 변호사가 없어..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한 친구녀석이 나에게 하소연 했다. "아니 인적성검사 문제에 도대체 왜 철학관련 글이 나오고, 인문학관련 글이 나오는거지?" 그리고 나는 그 친구가 풀고 있는 인적성검사 문제를 한 번 살펴보았다. 지문을 읽지 않아도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이는 내가 철학을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풀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지문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들의 나열이었고, 철학자의 사상들 중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개념들을 아는지 모르는지만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OX퀴즈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말 했다. "야 하루만 나한테 시간을 줘라, 내가 중요한 철학자들과 중요한 개념을 글로 써서 줄게, 그리고 그거만 읽어라."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주려고 이 글을 썼다. 혹시나 ..
⌜망아지 그리고 인간⌟ 여기. 바로 지금 여기에 자연에서 뛰놀고, 자연에서 나는 풀을 뜯고,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아주 건강한 자연 상태의 망아지가 한 마리 있다. 이 망아지가 보는 세계란,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언덕이었고, 그렇기에 망아지의 눈 속에 비치는 언덕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망아지의 눈 역시 끝없는 세계였다. 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망아지를 통해 망아지의 앞으로 부는 것이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역시 망아지를 통해 망아지의 뒤로 부는 것이었다. 시원한 바람은 망아지의 털 한올한올을 적신다. 망아지가 맞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했던가! 망아지의 발아래에는 땅이 있었고, 망아지의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다. 끝없는 생명의 기운이 망아지를 감..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한 곳만을 응시해야 하는 지금은 중세시대, 여기 불운하게도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그리스도적인 교의(敎義) 앞에서 불가(佛家)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사실 용납될 수 없다기 보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행(苦行)의 일부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숲길에서(그곳은 시야마저도 좁았던가?) 횃불 하나 없이 걷고 있는 것, 그저 드문드문 풀이 자라지 않은 곳이 진정 사람의 길이겠거니 믿고, 서툴게 사박사박 밟아가는 것. 그것은 승려에게 정신적인 고행은 아니었다(사실 승려는 정신적인 고행을 원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교의를 지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과한 환희의 일부. 그래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버릴 수 없는 사명. 반면, 지금의 고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