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비의 시간 죽이기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한 친구녀석이 나에게 하소연 했다. "아니 인적성검사 문제에 도대체 왜 철학관련 글이 나오고, 인문학관련 글이 나오는거지?" 그리고 나는 그 친구가 풀고 있는 인적성검사 문제를 한 번 살펴보았다. 지문을 읽지 않아도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이는 내가 철학을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풀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지문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들의 나열이었고, 철학자의 사상들 중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개념들을 아는지 모르는지만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OX퀴즈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말 했다. "야 하루만 나한테 시간을 줘라, 내가 중요한 철학자들과 중요한 개념을 글로 써서 줄게, 그리고 그거만 읽어라."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주려고 이 글을 썼다. 혹시나 ..
⌜망아지 그리고 인간⌟ 여기. 바로 지금 여기에 자연에서 뛰놀고, 자연에서 나는 풀을 뜯고,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아주 건강한 자연 상태의 망아지가 한 마리 있다. 이 망아지가 보는 세계란,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언덕이었고, 그렇기에 망아지의 눈 속에 비치는 언덕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망아지의 눈 역시 끝없는 세계였다. 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망아지를 통해 망아지의 앞으로 부는 것이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역시 망아지를 통해 망아지의 뒤로 부는 것이었다. 시원한 바람은 망아지의 털 한올한올을 적신다. 망아지가 맞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했던가! 망아지의 발아래에는 땅이 있었고, 망아지의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다. 끝없는 생명의 기운이 망아지를 감..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한 곳만을 응시해야 하는 지금은 중세시대, 여기 불운하게도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그리스도적인 교의(敎義) 앞에서 불가(佛家)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사실 용납될 수 없다기 보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행(苦行)의 일부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숲길에서(그곳은 시야마저도 좁았던가?) 횃불 하나 없이 걷고 있는 것, 그저 드문드문 풀이 자라지 않은 곳이 진정 사람의 길이겠거니 믿고, 서툴게 사박사박 밟아가는 것. 그것은 승려에게 정신적인 고행은 아니었다(사실 승려는 정신적인 고행을 원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교의를 지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과한 환희의 일부. 그래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버릴 수 없는 사명. 반면, 지금의 고행..